천주교 노형성당 |
우리 교구 사제 인사 발령이 금요일에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누가 어느 본당에 가고, 누가 어느 자리로 옮긴다는 온갖 하마평(下馬評, 직책 이동이나 임명에 관한 소문을 이르는 말)이 무성했습니다. 인사가 발표되니 많은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교우들의 표현이 참으로 귀에 거슬렸습니다. “어느 사제는 영전(榮轉)을 하였고, 어느 사제는 좌천(左遷)되었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시외본당 발령이 좌천이면 그 본당의 교우들은 무엇일까? 그 본당의 교우들은 하느님의 어둠의 자녀들이고, 시내 큰 본당은 하느님의 빛의 자녀들인가?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사제는 같은 목자입니다. 영전한 사제도 없고, 좌천당한 사제도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 사무엘기에서 사무엘이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부르십니다. 그때마다 사무엘은 엘리에게 달려가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엘리는 세 번이나 자기에게 오는 사무엘을 보면서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 부름에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그와 함께 계시어, 사무엘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사는 만사다.’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교회의 인사는 교구장을 통하여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존재를 인정 받지 못하여 섭섭하거나, 형평성에 어긋나 합리적으로 볼 수 없는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양들도 사제가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하고, 사제의 신원을 성찰해 본다면 인사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교우들도 세속의 시선과 잣대로 사제들의 모습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는 외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서품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사제직에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적인 시선과 판단은 사제들을 세속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또한 사제들의 사목적 열정과 의욕을 꺽어 버립니다. 사제에게는 임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가는 떠날 사람이지만, 조용히 있다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떠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임기동안 모든 것을 바쳐 교우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사제입니다. 이런 사제들을 우리는 존중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새로운 부임지로 떠나시는 모든 사제에게 존경과 형제애를 전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유학을 잘 마치고 노형에서 짧은 만남을 통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던 김영일 신부님을 우리는 착한목자로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새로운 소임지에서도 성소자들과 신학생들을 위하여 헌신하시기를 응원합니다.
또한 우리 본당으로 오시는 문종운(요한)신부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노형본당에서 착한 목자의 길을 걸어갈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노형본당 공동체가 사랑으로 일치하는 본당이 될 수 있도록 형제사제와 수도자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