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노형성당 |
[사순 제2주일 ? 2020. 3. 8. 주일] -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은 판신(염소의 뿔, 다리, 귀를 가진 다산의 신)을 극성스럽게 섬기는 우상숭배가 심한 지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필리피 지방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고, 어떠한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그리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수난과 죽임을 당하시고 사흗날에 되살아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놀라면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베드로의 충성과 순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가장 최고의 칭찬과 가장 호된 야단을 듣게 된 베드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베드로는 너무 힘들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베드로가 했던 말은 잘못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모든 것들이 절망 속에 빠지는 것을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베드로 역시 자기를 사랑하고 인정해 주었던 그분과의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느끼는 절망에서 던진 두려움의 표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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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슬픈 감정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 둘을 데리시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흰색’과 ‘빛남’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영광을 누리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모세는 율법, 엘리야는 예언자(예언)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탈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1열왕 19,8) 하느님을 체험하였고, 모세는 하느님께서 일으키실 메시아를 예언하였고(신명 18,15), 엘리야는 메시아의 선구자로 예언되었습니다(말라 4,5). 그리고 엘리야는 살아있는 존재로 승천하였고(2열왕 2,11), 모세는 승천했다고 전해지는데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신명 34,6). 구약의 인물들이 나타나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는 것은 구약성경이 예수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었고,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을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마태 5,17-18)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라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모습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엄청난 기쁨을 누린 것입니다. 산은 불편하고 열약한 조건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다면 그것은 가장 큰 선물이고 행복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귀한 분이 왔을 때 존경과 예의를 표하기 위하여 초막을 지었는데, 베드로는 원하시면 예수님, 모세, 엘리야에게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순수한 신앙 고백의 표현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후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데, 여기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체험을 통하여 더욱 강한 믿음을 갖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열흘 넘게 교우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다 보니, 사목자인 저도 무력감에 빠지고 자존감이 상실합니다. 그리고 조용한 성당에 와서 기도를 하는 교우들의 뒷모습에는 주님을 향한 간절한 그림자가 비칩니다.
나는 매일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라는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12년 만에 본당의 생활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좋으신 수녀님들과 착하고 신심 깊은 신자들과의 만남은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 곳에 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이런 행복들이 베드로처럼(물론 나는 베드로입니다.ㅋㅋㅋ) 감정 기복(업다운)에 따라 느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성찰을 해봅니다.
나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역시 사제이다. 사제는 취미, 인간관계, 레저, 운동 등에서 자신의 존재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식탁에서 교우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큰 행복임을..............”
저는 사랑하는 님들을 만나기 위하여 한 주일을 더 참아야 합니다. 그 만남을 위하여 그대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한 주일만 보고 싶으셔도(저는 그런데.. 여러분도 그렇죠?) 참으십시오. 그리고 견우와 직녀처럼 우리의 오작교인 기도로 만납시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이에게는 저주를 내리겠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창세 12, 2-3)
[김석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