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노형성당 |
우리가 어버이날 부르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서는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서는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 하여라.
사람의 마음속 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 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해,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이 노래는 양주동(梁柱東)씨 시를 이흥렬(李興烈)씨가 곡을 부친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불려진 시기는 1940년대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이흥렬(李興烈)이라는 음악의 남다른 재능이 많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재능이 있는 음악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작곡을 위해 피아노가 없으면 음악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으니 음악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음악에는 피아노가 필수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소자는 음악 공부를 이만 접고 귀국하려고 합니다."
한편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유학 간 아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가진 것도 없었지만, 조금씩 늘어난 빚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편지를 받은 다음 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동네 근처부터 원거리 산이란 산을 모조리 뒤져 쉼 없이 솔방울을 긁어모았습니다. 불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원(1930년대 쌀 한 가마는 13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노력으로 아들은 귀국하려는 생각을 바꾸어 그 돈으로 피아노를 샀습니다. 이흥렬은 어머니가 사준 피아노로 시인이며 문학박사인 양주동 님의 詩 '어머니의 마음'을 제일 먼저 작곡하였습니다. 피아노와 음악에 담겨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생명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는 외국에서는 맘마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엄마입니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보는 것도 엄마의 눈동자입니다.
어머니라는 단어의 음절에 담긴 속뜻은 ‘어'는 ‘부리다, 만들어내다'라는 뜻을 가진 거느릴 어, 진흙 어이며, ‘머'는 머드, 뫼, 메주 같은 울퉁불퉁하게 흐드러진 형태를 의미하고, ‘니’는 진흙 니라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첫 만남은 어머니이고, 마음도 몸도 생각도 어그러지고 울퉁불퉁한 존재로 제대로 된 형상을 갖추지 못한 존재를 빚는 자입니다. 그러나 화려하지도 아름다운 모습을 빚지는 못했지만 사랑은 완전했습니다.
1950~70년대를 추억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지금 여성들 모습에서 거의 찾기 힘듭니다. 나라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가난, 모욕, 고된 노동, 가부장적인 시집살이 속에서도 오직 자식 하나에 대한 소망으로 버티었습니다. 어머니라고 어찌 젊은 시절이 없었겠습니까? 이루고 싶은 꿈과 아름다움과 친구가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머니라고 왜 단점이, 연약한 점이 없었겠습니까?
많은 여성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엄마'라는 자리에 있고 보니 온통 부족함뿐이지만 인간이 가장 순수하고 오롯한 사랑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자식을 통해 깨닫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모두 베풀지 못하는 사랑을 어머니를 통하여 베풀어 주셨나 봅니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한 것이 아닐까요?
로사리아 어머니 입관을 하면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하나는 편안한 얼굴이었고, 하나는 7년 전 파킨슨병으로 인한 펴지지 않은 다리였습니다. 진액과 수액을 모두 내어주고 바짝 말라버린 나무 흔적만이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정순주 로사리아 어머니의 장례를 고인이 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미사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장례미사는 단순한 장례 절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미사는 2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셨던 사랑을 매일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베푸셨던 사랑을 나도 매일 실천하겠다는 약속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유가족 여러분은 오늘 장례미사에서 어머니가 살아생전 베푸셨던 사랑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그 사랑을 앞으로 실천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시간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영원히 나의 삶이 되기 위하여 어머니를 보내는 가족들은 몇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1. 용서와 화해입니다. 이 시간은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 앞에서 어머니께 용서를 청하고 화해하는 마무리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특히 그 이별이 죽음에 의한 것일 때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맺힌 것은 풀고, 소중한 기억은 확인하고, 화해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라는 인간사의 가장 기본적인 언어가 교환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사랑입니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삶의 굴곡에서 서로에게 뒤엉켜 있는 실타래와 풀리지 않는 매듭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2. 감사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한 감사입니다. 내가 걸어오는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에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돌아가신 분과의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장례라고 표현합니다. 장례는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다루어 처리하는 일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처리하는 과정, 죽은 사람과 관계가 있었던 살아 있는 사람이 시신의 처리 과정 전후에 가져야 할 태도 등을 하나의 연속된 절차로 정리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장례는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과 조문객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것에만 많은 신경을 씁니다. 장례라는 단어가 떠나는 분에 대한 기억보다 남아 있는 자들이 처리해야 할 일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어 버렸습니다. 장례는 보내는 자를 위한 남아 있는 자들의 하나의 형식과 과정으로 의미가 축소되지 말아야 합니다. ‘빨리 치워야 할’ 어떤 것이 아닙니다. 장례를 해치우는 일이 되어 버렸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육체의 관계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마음의 관계 사랑의 관계를 맺었기에 그를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에 영원히 묻어야 할 어머니로 기억할 것입니다.
주님! 양순주 로사리아 어머니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