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노형성당 |
당신의 신앙고백은?
“암컷 고양이가 자기 주인의 집에 있는 아들을 사랑한다. 이 고양이는 아프로디테라는 미의 여신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한다. 미의 여신은 고양이의 간절한 소원을 가엾게 여겨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어 준다. 아름다운 처녀를 본 청년은 첫 눈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첫날 밤에 신혼방에 쥐 한 마리가 들어왔는데, 이것을 목격한 처녀가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서 쥐를 잡고 맛있게 먹었다. 처녀가 된 고양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신랑은 놀라 고함을 치며 뛰쳐나갔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프로디테라는 미의 여신은 화가 나서 그녀를 다시 고양이로 되돌려 버렸다.”(그리스 신화 中)
사람의 인격은 어느 한순간에 형성되거나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직책이나 자리에 임명이 되거나 당선이 되어서 생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격은 어려서부터 가정, 주변 환경, 교육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를 인정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할 때 성장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토마스는 동료들의 증언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상처를 확인하고자 한다. 긍정적인 표현으로는 ‘눈을 통하여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다시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 확실함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성찰해야 한다. 지금 ‘그 자리’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실이나 사건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이고, 그 사실을 동료들이 증언해 주는 자리이다. 그런데 토마스는 자신의 논리와 생각, 그리고 판단만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난 일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동료들의 증언까지 믿지 않는 불신을 갖는다.
토마스 앞에 계신 분은 누구인가?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을 증언하고 이야기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들이다. 오늘 요한복음의 저자는 토마스가 원하는 대로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직접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하였는지 전하지 않는다. 단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토마스의 신앙고백만을 전한다. 토마스는 자신의 불신앙을 범했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신앙을 다시 고백한다. 모두가 바뀌지 않는 인격을 갖고 있음에도 토마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참 신앙을 고백하는 인격의 소유자가 되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